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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곳에서 만나는 우리

​-육종석

 

 작가가 작품제작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자기반영적인가에 있다.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으로서의 메타포를 자연스럽게 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원인 중 하나는 개인의 이성과 감정사이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는 결국 우리는 남(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본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의 시각에 의식이 쏠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보통 보편적인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데 많은 부분을 외부의 시선으로 초점을 맞추며,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외부의 시선에서 검증받았다는 안도감에서 자신의 의견을 이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같이 어떤 답을 찾아야만 하는 경우라면 외부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 예술의 경우는 그 이야기가 아무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 변화가능하며, 지역을 넘어 국적, 인종 등 각각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국뽕이라고 일컫는 애국심은 결국 외부에서의 평가와 실적에 그 영향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치 그것이 답인 것처럼 만족해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답에서 얻어지는 편안함을 예술장르에 적용시키는 것은 좀 가혹한 처사라 생각되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가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 외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적인 내부에서의 주관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지 객관화되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든 그 외부의 시각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 다양한 작품제작방식 중 하나이다. 이경희 작가의 이번 전시의 메인타이틀은 “Deep green side, we are” 이다. 이 타이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작가의 작품제작 방식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번 작품들의 특징은 경험에 의해 알고 있는 것과 기억에 의한 이미지의 추출을 들 수 있다. 경험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며 기억은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그 도구로 구현하는 형식은 그녀의 경우 면과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녀가 쓰는 면의 방식은 축적의 이미지다. 레이어를 쌓듯 물감을 펴 발라 축적해 나가는 이 방식은 덮는다는 의미에서 지우는 방식 즉 삭제의 이미지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삭제가 완전한 부정을 추구하며 처음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면 축적은 그것이 좋든 싫든 경험을 바탕으로 부정하지 않는 스스로의 인정에 의한 새로운 바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일련의 행위는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 하며 자주 사용하는 말인 역사청산은 말 그대로 깨끗이 지워버린다는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구실을 주지만, 이는 실제 역사에서 완전히 청산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그것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그것을 품고 기억해 내며 반성하고 끊임없이 새로 고쳐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경험들은 기억의 한편으로 자리잡아가며 비로소 추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경희 작가의 작업에서 면은 대상을 덮고 가리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라면 선은 그 대상을 드러내 기억하는데 사용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선은 면과 달리 특정한 형태로서의 기능이 가능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어떤 기록의 성격을 띤다. 책 속에 들어가는 삽화들이 대체로 판화나 드로잉이 차지하는 것처럼 작가는 면으로 축적된 기억의 역사들을 선으로 기억해내고 추억한다. 이경희작가의 이번 전시는 중국 충칭에서의 체류기간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는 작업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표적인 색은 그린, 더욱 어두운 그린이다. 자연의 색이라 일컫는 이 녹색은 눈이 피로할 때면 편하게 풀어주는 용도로 자주 사용되어지는 색이다. 이 색은 충칭의 자연풍광으로서의 상징적인 녹색이면서 동시에 현지인들의 환대와 배려로 인한 안정의 색으로서의 녹색이다. 하지만 때때로 타지인으로서의 문화적 차이들은 그 강조된 편안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은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이지만 그 수면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반대로 더욱 피로해 지는 것처럼 과도한 긍정은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풀잎에 베인 상처는 자칫 가볍게 여겨질 수 있지만, 그 상처는 생각보다 더 아프고 쓰라리며 그것이 누적되면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그 녹색에서 얻어지는 강조된 편안함을 상회한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불안해하는 홍콩의 젊은이들을 실제 숲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충칭의 삼림을 빗댄 것처럼 깊고 어두운 녹색의 공간에 갇힌 타지인으로서의 불안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기는커녕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다. 신경 쓰이고 거슬리지만 그만큼 쉽게 잊히고 무시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더 큰 상처가 되기 전에 작가는 그런 상처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듯하다. 그리고 그 색은 아마 깊은 녹색일 것이다. “Deep green side, we are”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아니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곳에서 만나는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그 곳에서 우리는 진정 편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반문이 이경희 작가의 큰 뼈대가 된다.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지켜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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